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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는 보헤미안 기질을 지닌 최동열의 긴 여정에서 궁극의 장소일 것이다. 그는 1970년대 초 도미 후 오랜 시간 미국의 여러 지역과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와 이지말 등에서 거주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인디언의 의식적 벽화나 아즈텍 유적지에서 감동을 받게 된다.

그것은 무한대의 감정, 연상과 역사적 사실이 교차하는 특별한 감각으로 융이 말하는 ‘집단기억’에 연결되어 있다. 이후 작가는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이류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실크로드, 티베트, 네팔, 인도 북부를 여행하면서 불교 벽화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또한 그는 귀를에는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극한, 풀 한포기 자라기 힘든 척박한 환경에서도 최소한의 것에 만족하며 사는 원주민의 소박한 삶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된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 혹은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가 일상에 녹아 있는 그곳에서 마침내 그는 신들과 마주서게 된다. 전시 제목 에서 신은 히말라야 산맥을 가로지르는 험준한 산 그 자체를 의미한다. 서구인의 정복 의지 아래 짓밟히기 이전, 원주민에게 설산은 태고부터 그 자리를 지켜 온 영적인 존재로 우러러 봐야만 할 애니미즘적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지친 영혼을 품어 주는 히말라야에 최동열은 삶의 한 부분을 귀의하게 된다. 10여 년 전부터 작가는 매년 2번 그곳을 찾는다. 작년 하반기에 그는 작은 크기의 캔버스 여러 개를 들고 안나푸르나, 라다크, 잔스카에서 작업을 강행했다. 강이 얼어붙어 얼음담요란 뜻을 지닌 ‘차다 chaddar’를 건너야 비로소 잔스카에 들어갈 수 있다.

광풍에 캔버스가 날아가거나 붓을 든 손이 마비되기 전까지 고군분투한 신체의 궤적이 생생히 담긴 화면은 작가의 생명 공간이다. 꿈틀거리는 선은 또 다른 선을 부르고 영묘한 산 형상의 묘사라기보다는 화면에서 자율성을 지닌 연속체/생명체가 된다.

이번 전시에서 최동열은 현장에서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물리치며 기록한 것에 특유의 조형 감각을 접목한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거대한 자연과 직접 당당하게 마주하면서 숭고를 느꼈다. 숭고는 그의 작품에서 이상적인 미와 완벽한 형태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다.

일견, 사선으로 분할하고 재구성한 화면 위 과장된 산세, 왜곡된 여인, 터질 듯 만개한 꽃의 조합을 이질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현장에서의 자발적이고 즉흥적인 태도는 작업실에서 카오스와 질서의 병치로 발전된다. 정규 미술교육의 틀이 없는 점은 그의 그림에 세련미 대신 날것의 생생함을 부여한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산과 여인, 꽃의 조합은 화면 속 대상 간의 거리감을 없애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그를 압도하는 산, 히말라야 사막에서 발견한 야생 장미, 여인 모두 그에겐 생명력의 표상으로 화면에서 하나가 돼버린다. 눈부신 노랑, 버밀리언, 밝은 올리브그린은 그림에 생동하는 에너지를 더해 준다. 이런 발색 효과는 벌집과 송진을 중탕해서 안료를 섞은 납화 기업이기에 가능하다.

팔을 괴고 눕거나 의자에 앉아 관람자를 뒤로 한채 그림 속 풍광을 즐기는 완만한 커브의 나부는 작가 자신인 동시에 그가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아름다움의 화신이기도 하다. 이는 오래전 인도 국립박물관에서 그를 매료시켰던 아찔한 곡선의 조각상, 다산과 풍요의 여신 약사Yaksha에게서 영감을 받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나름의 정의를 발전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미래가 보장된 명문학교 진학을 거부한 점이나 뉴욕 화단의 주목에서 멀리 떨어져 지구촌 곳곳을 둥지로 삼은 최동열은 진정한 의미의 코스모폴리탄 음유시인이다.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며 자유를 누리는 그에게 그림과 글은 둘 다 내면세계를 외부로 드러내는 매체다.

연금술사의 실험처럼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압화 제작 과정을 즐기듯이 그는 예측 불허한 히말라야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소위 외형적인 성공에 안주하기보다는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에 몸을 던지는 작가다. 그의 그림은 드라마틱한 자신의 삶을 위한 광시곡이다.

미술비평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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